이번 제 40차 한국YMCA 전국대회는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 는 주제로 치뤄졌습니다.
청년운동에 대해서 고민하고, 청년운동이 실체이기도 한, 대학YMCA전국연맹은
그래서 더 깊은 기대와 의미를 가지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대회 주제강연문과 지정토론문을 첨부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공유하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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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강연문> 나주대회.hwp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 - 새로운 부름, 새로운 청년운동
안재웅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
1. 만남
우리는 오늘 한국YMCA전국연맹 제40차 전국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다. 이번대회의 주제는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새로운 부름, 새로운 청년운동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과 회원 그리고 연맹이사와 실무자들은 이 시대의 변화를 똑바로 볼 수 있는 눈과, 세상 돌아가는 이슈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와,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냉철한 이성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는 결단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겠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얼마동안 남의 도움을 받고 자라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해서 어떤 조직이나 모임에 가담해서 보람된 일을 해보고자 노력한다. 때로는 제각기 나름대로의 종교를 선택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쓰기도 한다.
인간사회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 가려고 애쓴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을 크게 청년층, 장년층, 그리고 노년층으로 구분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비교되듯 자연의 순리에 따라 청년, 장년, 노년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연속적인 관계라 하겠다.
요즘 월드컵 열기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이 경기를 보면 경기장에 나가 뛰는 선수들은 모두 청년층에 속하는 젊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이기에 활력이 넘치고 주어진 시간을 거뜬히 소화해 낼 뿐만 아니라 저 나름대로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지도하고 훈련하고 전략을 가르치는 감독과 코치는 장년층이다. 또한 월드컵을 세계적인 스포츠로 운영하고 흥행에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은 노년층이다. 이처럼 청년의 활력과 장년의 실력과 노년의 능력이 세대간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성공적인 월드컵이 될 수 있다.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는 명제는 청년층만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YMCA 구성원 모두가 매달려 함께 풀어야 할 당면 과제라 하겠다.
2. 선택
YMCA의 창시자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12명의 동료와 함께 1884년 6월 6일 런던에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낯선 도시 생활로 말미암아 점점 메말라가는 인간성의 위기를 느끼게 되자 정신적인 안정(spiritual well-being)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런 모임을 만들었다. 동료 스미스(Christopher Smith)는 이 모임의 이름을 YMCA라 불렀고 그 이름은 마침내 전 세계 110여개국에 1만여개가 넘는 시청년회로 성장했다.
윌리엄스는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평신자 스스로가 개척하고 그들 스스로가 운동을 주도해 가는 평신자 운동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고 평신자가 이끄는 YMCA 운동은 마침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모범을 보여주는 한 축으로 성장했다. 윌리엄스가 YMCA를 창립하였다면 듀낭(Henri Dunant)은 1855년 파리에서 세계YMCA연맹을 창설했다. 그리고 파리기준을 채택했다. 이들의 꿈은 YMCA라는 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이 평신자에 의해서 자리잡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리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가운데 하필이면 YMCA를 선택한 것일까. 나 스스로 선택했는가 아니면 친구따라 강남 가듯 엉거주춤 따라왔는가. YMCA운동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인가 한번쯤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하겠다. 내가 기왕 선택한 운동이라면 YMCA 목적과 사업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회원의 책무가 아닐까.
3. 책무
1855년 파리에서 만난 세계YMCA연맹 창립회원들은 크게 네 부류의 계층으로 구분된다. 지식인(intellectuals), 교육자(educationists), 기업인(businessmen), 그리고 탁월한 평신자 지도자(outstanding lay leaders)로 당대의 계층을 망라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1891년 600여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YMCA 세계대회는 이 운동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기장(insignia)을 채택했다. 요한복음 17장 21절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기를(that they may all be one)" 바라는 그리스도 예수의 기도를 담고 평화를 상징하는 글자도 함께 적어 넣었다. YMCA운동은 일치(unity)와 형제애(brotherhood)와 에큐메니즘(ecumenism)을 동시에 이루어가는 운동의 책무를 스스로 지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스프링휠드 대학의 굴릭(Luther H. Gulick)은 YMCA의 "빨간 삼각형(The Red Triangle)"의 상징을 세계적으로 퍼뜨린 장본인이다. YMCA는 지적으로나(mind), 정신적으로나(spirit), 신체적(body)으로 모두 건강해야 하므로 삼각형으로 표상되는 심벌을 만들어 냈다. 이 상징은 1891년 미국 YMCA 스프링휠드 대회 때 채택되었으며 이 세가지 영역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바람직한 사람을 배양해내는 일에 YMCA가 앞장 설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YMCA는 회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고, 회비를 적극적으로 내고, 바람직한 지도력을 선출하고, 운동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공과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순수한 에큐메니컬 평신자 운동이다.
4. 동행
YMCA는 회원이 주축이 되는 기독청년운동이다. 그런데 정작 청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는 주제를 내건 모양이다. 이제 앞서 말한 청년층, 장년층, 그리고 노년층이 함께 동행하는 대 장정(大長征)을 펴야 한다. 함께 걷다가 뛸 수도 있고 그러다가 넘어질 수도 있으며 다칠 수도 있다. 힘들면 쉬기도 하고 다시 스스로를 추스려 계속 장정을 이어갈 수있다. 그런데 목적지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의 내용이 확실하게 명시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포기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모두가 즐겁게 더불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함께 가던 청년들이 대오를 이탈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동행하기 싫어서인가. 아니면 지친 탓일까. 더 이상 매력이 없단 말인가. 우리의 대 장정을 점검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우리는 YMCA의 이상과 현실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다시 청년운동을 하기 위해서 새롭게 태어나야 하겠다.
5. 전략
알린스키(Sual D. Alinsky)는 지역조직의 전략가로 유명하다. 그는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확신에서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ation)을 강조했다. 조직된 힘은 지역사회를 하나씩 바꿔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고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알린스키는 힘이 있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알린스키는 힘이란 물론 조직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 많은 회원이 적극적으로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면 그 만큼 큰 힘이 구축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물론 힘은 평화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 힘(power)은 정신적, 신체적, 그리고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기도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액튼(Acton)경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힘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또한 상황을 뒤집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힘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밀어 부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령 질서, 안보, 윤리, 개화된 삶을 즐기는 환경등은 힘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청년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으는 일이 바로 YMCA가 해야 할 전략이라 할 수 있다.
● 이기심(self-interest)은 운동에 흥미를 더해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이기심은 매사에 관심을 끌게 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기심을 잘 발전시키면 대중의 이익(public-interest)에 봉사할 수 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예수는 말했다. Self-interest로 시작해서 public-interest로 승화시키는 전략적 운동을 YMCA는 해야겠다.
● 협상(compromise)은 운동을 넓혀가는 데 꼭 필요한 열쇠와 같은 말이다. 일단 한 쪽이 큰 것을 요구하다가 얼마쯤으로 낙착이 될 경우 그만큼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게 된다. 사람사는 사회는 언제나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갈등 해소의 방안으로 협상을 하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고서야 협상을 잘하는 쪽이 항상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지켜야 할 기본은 절대로 양보해선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은 기술이며 예술과도 같은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으로서의 YMCA는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을 마다해서는 안되며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이고(Ego)는 운동을 주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어떤 조직의 원칙이나 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때 이고는 나름대로 한 몫을 하게 된다. 이고는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아마도 자신감(self-confidence)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주민조직운동이나 YMCA운동에 매달리게 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YMCA는 전략적으로 어떤 과제를 반드시 성공시키고자 하는 이고의 힘을 앞세울 필요가 있다.
● 갈등(conflict)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용어이다. 때로는 갈등의 배경에 종교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갈등은 독주하는 그룹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은 예기치 않았던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YMCA만 하더라도 여러 측면에서 갈등의 요소가 내재해 있다. 그러므로 이런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컨센서스(consensus)를 도출해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YMCA는 갈등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에큐메니컬 운동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효시는 아마도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렸던 세계선교협의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라 할 수 있다. 이 대회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YMCA 출신인 모트(John R. Mott)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계에 증거하기 위해서 당대의 선교단체들과 이를 지원하는 서방교회가 주축이 되어 이 모임을 주선했다. 갈라진 서방교회가 경쟁적으로 선교에 뛰어들면서 파생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함께 해결해 보고자 이 대회를 열었다. "교리는 갈라졌지만 봉사는 함께 한다(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는 정신이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이다. 서방교회 주도로 에딘버러에 모인 피 선교지 교회(younger church)의 대표 17명은 모두 옵저버(observer)자격으로 참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YMCA 출신인 윤치호선생이 참석해서 인상적인 발언은 물론 출중한 지도력을 보였다.
100년이 지난 후 올 6월 2일부터 6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500여명의 대표들이 모여 "2010 에딘버러 선교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서방교회의 역할은 크게 위축된 반면 비 서구교회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서 나름대로의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YMCA는 초기의 리더십은 온데 간데 없고 서구기독교의 쇠퇴에 휩쓸려 별반 인상적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고 실망스런 현실이다. 비 서구교회는 이미 서구로부터 독자노선을 걸었기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고 확실한 색갈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YMCA는 서방에 묻혀 그림자 노릇만 한 셈이다. 그러므로 YMCA는 하루 빨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착실하게 해나가야 하겠다. 한국YMCA 전국연맹도 한국의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컬 기구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현안을 함께 협의하고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대응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YMCA는 그동안 훌륭한 지도력을 배출했다. 윤치호 선생이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분수령이 되는 에딘버러 대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인물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려오고 있다. 서광선 교수가 세계YMCA연맹 총재를 역임한 일이나, 박재창 교수가 아시아 태평양지역YMCA연맹 회장으로 현재 활약하는 일은 한국 YMCA의 위상을 크게 높여준 경우이다. 또한 이수민 목사가 아시아 태평양지역YMCA연맹 사무총장과 세계YMCA 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한 것과 남부원 광주YMCA 사무총장이 아시아 태평양지역YMCA 연맹 프로그람 국장으로 활약한 것은 뛰어난 실무력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한국 YMCA는 지속적으로 지도력을 배양해서 우리의 리더십을 국제적으로 이어가는 전통을 지켜나가야 하겠다.
7. 청년문화운동
박재창 교수는 "국가와 시민"(2009) 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청년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년이야말로 지구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긍심 상실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고 했다. 아울러 "청년은 유연하기 때문에 적응력이 뛰어나며, 아직 성숙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이고,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용감하며, 미래가 있기 때문에 더욱 진취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촛불시위의 비폭력적 방법을 높이 평가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보여준 촛불시위는 분명히 청년들이 만들어 낸 청년문화의 일면이다. 이들은 유연하기 때문에 스스로 즐기면서 자신들의 의사를 훌륭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들이 보여준 기동력, 이들이 만들어 낸 창의력, 이들이 밀어부친 돌파력, 이들이 모아낸 조직력, 이들이 일으킨 영향력 등은 청년문화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한국YMCA는 청년문화운동의 내용을 꾸준히 개발하고 다듬고 보완하고 전파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하겠다. 때로는 청년문화운동은 반문화(反文化) 혹은 counter-culture가 될 수 있다. 마치 변증법적으로 역사의 발전을 설명할 때 흔히 쓰는 정(正), 반(反), 합(合)의 논리는 분명히 청년문화운동이 제 설 자리를 찿아 독특한 역할을 가능케 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주도해온 대화문화, 연대문화, 화해문화, 참여문화, 비폭력문화등을 청년문화의 입장에서 대폭 바꿔나가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 청년문화운동은 한국YMCA가 부분적으로 해왔지만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과제라고 본다.
8. 생명평화운동
한국YMCA는 생명평화운동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 올인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매우 적절할 뿐만 아니라 꼭 해야 할 운동을 하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거나 죽이는 반 평화세력들이 주도하는 전쟁, 테러, 납치, 무기개발, 인권유린, 환경파괴 등의 죄악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 예수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10:10)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Fullness of Life for All", 이 말에는 생명과 평화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온 천하 보다도 귀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nobody로 취급받을 때 이들을 somebody로 받드는 모심과 섬김의 자세가 필요하다. 생명평화운동은 당장 사랑을 베푸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와 너, 나와 자연, 나와 우주, 나와 하나님과 진실된 사랑으로 교감하면 죽임, 파괴, 미움등을 무난하게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 하나가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면 그 평화를 스스로 관리해야 하고 또 더 넓은 공동체의 평화를 함께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YMCA연맹은 보다 적극적으로 생명평화운동을 펼쳐나가야 하겠다.
9. 디아코니아운동
요즘 크리스천은 디아코니아(diakonia)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세 축을 꼽을 때 일치(unity), 선교(mission), 그리고 디아코니아 혹은 봉사(service)로 요약한다. 시민사회운동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민에게 service를 제공한다. 특히 소외된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는다. 요즘은 다문화 가정으로 디아코니아의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청년취업의 문제, 청년실업의 문제, 청년자살의 문제, 청년폭력의 문제, 청년범죄의 문제, 청년마약의 문제, 청년교육의 문제, 청년의 성과 관련한 문제등은 청년복지 차원에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한국YMCA는 60여 시청년회로 하여금 그들의 상황에 맡는 디아코니아 사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된다고 본다. 이런 일은 지역 교회와 협력하게 되면 훨씬 효과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10. 새로운 부름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의 제자로 뽑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을 회개하라고 외쳐야 한다. 때로는 예언자들이 했던 것처럼 과감하게 잘못을 뉘우치도록 외쳐야 한다. 예언자들은 부패가 만연할 때, 권력의 폭력이 난무할 때, 도덕적으로 타락할 때, 정의와 평화가 위태로울 때,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할 때, 진리나 진실이 은폐될 때,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막을 때, 서슴치 않고 각성을 촉구했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할 말을 했다. 현실을 똑바로 보는 사람들(seers) 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다보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한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도록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는 스페인으로 도망쳤다.(요 1:1~3) 요나 신드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형편이다. 요나처럼 방향을 바꿔 도망치는 부류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빤히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는 예언하는 일 자체가 두려워서 회피한다. 4대강 개발을 중단하고 생명의 강으로 살아나게 하자는 말도 못하고 지낸다.
새로운 부름을 받은 우리는 담대하게 예언하고, 회개를 외치고, 화해토록 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다.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켜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임무를 우리는 부여받았다. 우리를 갈라놓는 벽이나 장애물을 허무는 일을 하도록 우리는 새로운 부름을 받은 것이다.
11. 오늘의 현실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저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2009)을 이렇게 요약했다. 즉 욕망(Disire), 모더니즘(Modernism), 제국주의(Imperialism), 몬스터(Monsters), 그리고 종교(Religions)로 전 지구가 이 힘에 끌려가는 형국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커피가 세계역사를 움직인다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17세기 유럽에 전파된 커피의 '잠이오지 않는 속성'과 자극이 끊임없이 인간의 나태함과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므로써 근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커피의 '각성하게 하는 요소'와 '지칠줄 모르고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근대화의 매커니즘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역사가 혁명적으로 바뀐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욕망이라는 중요한 코드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으로 '커피와 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가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더 나아가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위,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왔고, 또 인간의 삶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인류 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칫 놓치고 있었거나, 혹은 짐짓 외면해왔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빼곡 채워져 있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새로운 청년운동을 하기란 그리 쉬운 여건이 아니다. 나는 중국인들이 즐겨쓰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격물치지(格物致知)" 그리고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같은 말을 좋아한다. 위커리(Philip L. Wickeri)는 구동존이(Seeking the Common Ground)를 중국 기독교의 핵심적인 선교전략으로 보았다. 홍콩대학은 격물치지를 교훈으로 삼아 인재를 배양하고 있다. 실사구시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노자는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가장 이상적인 정치이념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YMCA도 노자의 정신을 따른다면 쓸데없는 콤플렉스로부터 해방되어 실질적인 일을 알차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시 청년운동을 생각한다"-새로운 부름, 새로운 청년운동은 떠벌리지 않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을 빼자는 말은 아니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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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토론문> 전국대회지정토론-이태영.hwp
그러니 웃으며 축제하자
대학YMCA전국연맹 회장 이태영
2010년 봄
2010년 봄, 대학을 다니는 한 학생의 자발적 퇴교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주변의 몇몇 친구들은 이제 이 자발적 퇴교 선언으로부터 이어질 거대한 탑 속의 ‘돌 빼내기’에 기대를 했고, 사회는 드디어 대학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며 셀 수 없는 논리와 이야기를 생산해냈다. 그 와중에는 그 돌 빼내기를 무의미함으로 만들려는 사람들도 존재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 퇴교 선언을 한 학생의 배경을 운운하며 이 역시 경쟁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탑은 여전히 서 있는 것 같다.
‘선언’은 ‘선언’으로 의미가 있었지만, 움직임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다. 기말고사를 맞이한 학교는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고, 초조함과 불안함이 도서관 한 가득이다. 방학이 다가오니, 영어공부, 인턴 등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 학점을 관리하고 이중전공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여름학기를 들어야 한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주를 쉬면,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회는 여간 답답한가 보다. 20대가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자기들 먹고 살일 걱정하며 걱정할일도 아닌 것 같고 쩔쩔매고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이 세대는 가망이 없다며, 10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어제, 학교 안에 고추와 토마토, 호박 등등을 심었다. 원래는 학생회관 앞에 텃밭을 만들고 멋있게 해보려고 했는데, 학교 관리과에서 허가를 안 내주는 바람에 매점 빵 상자를 여러 개 얻어서 옮겨 심고, 학생회관 뒷 편에 예쁘게 놓아두었다.
작물을 심고 있으니 여러 분들께서 관심을 표해주셨다. 재미있으신가 보다. “이렇게 심으면 너무 좁아서 고추 다 죽어”, “이 통은 바닥에 구멍을 뚫어야 해”, “호박 열리면 나도 따먹어도 되나?”, “에이, 농사 한 번도 안 지어 봤구만?”
때로는 당연한 이야기도 다시 해주시고, 새로운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러다가 지나다니는 분들이 이야기가 서로 다른 경우도 많아서 심는 우리는 헷갈리고, 아마 그 사이에 있는 작물들도 헷갈렸을 것 같다. 우리는 다른 분의 또 다른 충고를 듣고 고민하는데, 다시 오셔서 자신의 충고가 이행되지 않았으면, 그것을 재차 강조하시고 다시 가신다.
여간 헷갈려 하며 어려워하고 있는데, 식당 노동자 분이 오셔서 “생각만 해도 재미있네, 이거” 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렇게 서로의 애정이 모이고, 또 나눠갖게 되는구나.
아마, 지금의 20대 청년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의 본질은 그런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네”라고 말씀하신 분의 감정. 그래서 때로는 얘들이 잘하는 것도 같고, 가끔은 너무 답답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다.
비가 오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병들어서 죽을 것만 같던 치커리가 너무나 건강하게 새로운 잎을 보여줬다. 그런거다.
분석과 판단
지금의 청년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이 청년들이 왜 움직일 수 없는지, 지난 몇 년간 수 백가지의 논리적 분석이 등장했던 것 같다. 이 논리적 분석들의 등장은 충분히 유의미해서, 이제 청년세대의 위기와 문제점은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되어있는 듯 하다. 적어도 무엇이 현상이고,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한계인지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결국 이 경쟁 사회 속에서, 그것을 강조하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구조에 매몰되어 몰입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불안과 초조함은 그 몰입을 심화시킨다. 몰입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힘을 뺏어가고, 조직되지 않은 개인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금의 20대가 청소년기에 겪은 IMF라는 개인사적 트라우마가 힘을 더한다.
그래서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 청년을 탓하다가도, 그런 시스템을 만든 자신들을 탓하기도 하고, 그래서 잠시 주춤하기도 한다. “너희들이 언제 단체행동하나 보자”라고 한 교수가 있었고, “요즘 애들이 우리때보다 훨씬 똑똑하지”라고 감탄한 교수도 있었다.
분명히 개인화된 세대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개인화가 그렇게 나쁜 것 투성이는 아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쉽게 모이지 못하고, 사회에 관심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꽤 배려 깊다. 약속이 있고, 과제가 있고, 시험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해 누구도 강요하지 못한다. 이것이 청년 세대가 갖는 연대의 현실이지만, 그 강요하지 못함이 갖는 정서는 꽤나 깊은 정신적 유대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서로를 알고 있어서, 그 경험이 자신의 그것과 닿아있어서 이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좋게 이야기할 수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적어도 ‘타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에 대한 경계’라는 그 감수성은 소중하다. ‘경계’에서 한발 나아가 움직임이 시작될 때, 나는 이 감수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흐름은 정말 대단할 것이라 믿는다. 누구도 탓하지 않고, 터부시 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같이 하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시작되는 연대는 너무도 견고하고, 그러면서도 움직임이 가벼워서 큰 물결이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논리적 판단’이나 ‘분석’이 아닌 것 같다. 인간이란, 세대란 그렇게 분석과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실험체가 아니다. 탓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고, 차분히 보는 거다. 그리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소중하다면 지키고 만들면 되는 거다.
대학YMCA - 건강한 청년 공동체 만들기
대학YMCA를 하면서 대학YMCA는 모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함께 모여서 사회를 그리고, 그 사회를 자신들의 모임에서부터 실현하여 점차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대학YMCA가 갖는 운동성이라 생각한다. 그 시작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고, 그것이 대학YMCA공동체로, 캠퍼스로, 지역으로 힘있게 넓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그 힘은 엄청날 것이다. 대학YMCA는 스스로 기독교 사회운동이라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러한 고민과 실천이 결국은 기독교 사회운동이 갖는 매력이고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의 학생사회에서는 언어 그대로 해석되는 ‘모이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소중하다. 아마 그러한 현상은 ‘학생사회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대학은 마치 취업을 위한 ‘학원’처럼 되어가고 있어서, 사회가 없어지고, 시민이 없어지고 있다. 학생사회가 붕괴되고 ‘학생’정체성이 애매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상과는 별개로, 학생사회가 필요하고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여전하다. 학생사회에서의 경험은 그 자체로 ‘학교’가 되어 건강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길러낸다. 사회를 구성하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꿔가는 경험은 한 개인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학생사회의 개인 개인이 또 다른 자신들의 공간에서 만들어갈 움직임이라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변화다.
그래서 대학YMCA의 모임은 더 소중한 것이다. 모임이 그 자체로 힘을 갖고 확대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캠퍼스 사업을 기획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학생사회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학YMCA로 모이면 좋겠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끼리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경험의 즐거움이 확신을 만들어서 ‘함께 하자’고 넓혀가면 되는 것이다.
대학YMCA - “하고 싶은 것이 뭐야?”
대학YMCA는 지난 겨울대회에서 대학YMCA조직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조직의 가장 비효율적인 대학YMCA의 특징이란 “하고 싶은 것을 직접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새롭게 대학YMCA를 조직하는 경험을 한 친구들은 그 문구가 가진 매력과 답답함을 동시에 토로하며, 그 답답함이 결국 사람들이 다가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을 해 봐라.”라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으니 온 사람이 만들어보라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사회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이야기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장래희망이야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묻지만, 그 과정 과정에서 무엇이 하고 싶은지는 누구도 묻지 않고, 궁금해 하지 않는다. 장래희망은 결국 직업일 뿐이지, 누구도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니?”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다. 장래희망이라는 인생의 목표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렵다. 어쨌든 대학YMCA는 생각부터 답답한 그 질문을 해왔던 것이다.
그래도 이 질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어려움은 그 다음에도 이어진다. 하고 싶은 것을 기껏 생각하고 말하면,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 경험이 또 힘을 빼는 것이다. 답답함이 배가 되고, 확신이 사라지고,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함께 하자”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이 최근 몇 년간의 대학YMCA의 경험이었다. 지칠 때도 되었고, 지친 사람들도 있지만, 길게 보면 이것은 결국 ‘회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실제로 조직하여 실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는 회복의 과정이다. 그 경험은 개인에게 축적되기도 하고, 공동체에 축적되기도 해서 조금씩 실력이 쌓이고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YMCA는 계속 물어보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뭐야?”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같이 듣고, 방법을 생각하고, 판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그렇게 대학YMCA는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청년 공동체가 되게 될 것이다.
소중하다면, 만들고 지키면 되는 것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만들고, 지키면 되는 것이다. 세대를 나누고, 세대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 역할을 서로 규정짓는 것은 이제 충분히 했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자”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면, 멋지고 충분하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건강한 청년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중함을 공유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복의 기간을 함께할 인내를 연습하고, 실제로 차분하게 움직이면 된다. 그 차분함은 지치지 않는 동력을 만들고, 발랄한 공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누가 강한지 두고 보도록 하자.”는 자발적 퇴교 선언에 인용 된 소로우 선생의 한 마디는 멋지다. 하지만 ‘누가 강한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두고 볼 것은 함께 만들어갈 변화이다.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 밥 말리는 “혁명은 그리 쉽게 오지 않고,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 그러니 웃으며 기다리자”고 이야기 했다. 쉽게 오지도 않고, 빨리 오지도 않는 변화를 웃으며 기다리자니. 대학YMCA는, 앞으로 만들어 갈 청년 운동은 그렇게 해가고 싶다. 그래, “그러니 웃으며 축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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